외부 필자2009. 4. 20. 16:39
(이 글은 아트폴리 제공으로 '하이카다이렉트 웹진'에 연재되는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왕초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 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요사진도 미술인가요?

이규현당연하지요흔히 그림이나 조각만 미술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요하지만 사진은 미술의 아주 중요한 영역입니다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회화조각을 압도할 정도로 많은 미술작가들이 사진을 하고 있고관람객들도 회화 못지 않게 사진을 좋아하지요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인기 있는 작가들의 사진은 회화 못지 않은 가격으로 대접을 받고 있답니다사실 요즘 작가들은 회화사진조각영상(비디오)을 넘나들며 하는 멀티플레이어들도 많아요.

왕초보그래요하지만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규현그야 그렇지요이젠 똑딱 카메라뿐 아니라전문가용 카메라로 전문가 못지 않게 사진을 잘 찍는 일반인들도 많은 게 사실이지요하지만 그림도 사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 아닌가요잘 그리고 못 그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얼마나 평범하지 않게 작가의 개성과 생각이 들어가게 하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봐야지요.


왕초보사진이 미술로 인정을 받은 건 오래 전부터인가요?
이규현사진은 처음엔 기록으로서만 기능을 한 것이지만그 때부터 이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해요공식적으로 사진이 발명됐다고 발표된 것은 1839년입니다물론 그 전부터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요그런데 사진이 보급 되면서 우선 미술이라는 예술분야 자체에 변화가 왔습니다인상파 화가들이 등장한 게 19세기 후반인 것을 잘 생각해보세요화가들은 사진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더 이상 외부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외부세계를 기록한다는 기능면에서 그림은 어차피 사진에 완전히 밀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그런데 사진 역시 단순히 기록 하는 기능 외에 예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점점 사진가들은 깨닫게 되었어요사진 역시 100%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작가의 시선과 의도에 따라 제각각 개성이 다른 작품으로 나오는 것이었지요
예를 들면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사진가들은 미국 서부 대륙을 소재로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요그건 그냥 자연을 그대로 기록한 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어요에드워드 웨스턴(1886~1958)이라는 미국 사진작가의구름죽음의 계곡이나 오크몬테리 카운티’ 같은 작품을 보세요광활한 자연에서 뿜어져 나오는신비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요이 당시 미국 사진작가들은 이런 사진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이미지즉 기회의 땅신비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어요사진 찍는 기술이 대중화할수록 이렇게 작가가 사진에 담는 생각즉 컨셉(concept)은 훨씬 중요해지고 있어요.
 

왕초보컨셉이라니요?

이규현토드 파파조지라는 사진가는 기술발달로 누구나 사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사진가는 기술자가 아니라 시인이 되었다고 말했어요작가의 아이디어와 주제가 중요하다는 겁니다예를 들어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에 뽑혔던 정연두라는 작가의 초기작품인 원더랜드’ 시리즈를 볼까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와서그 그림과 똑 같은 상황을 실제로 연출한 뒤에 사진을 찍은 거예요아이들 그림 속에서는 공간감각이 뒤죽박죽이에요그래서 아이들 그림과 똑 같은 상황을 연출 하다 보니 사진 속 물건들도 엉망으로 놓여있지요테이블이 납작하게 눌려서 바닥에 누워 있고벽시계도 바닥에 붙어 있고실제 현실에서는 물건이 이렇게 놓여지는 법이 없으니이 사진은 현실이 아니지요하지만 아이들 머릿속에서 이 사진은 분명 현실인 거예요이 작가는 있는 그대로를 찍지만결과물을 보면 꼭 합성한 것처럼 뭔가 이상합니다. ‘현실과 가짜’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기 때문인데요이런 방법으로 진짜와 가짜가 구분이 되지 않는어찌 보면 구분이 의미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왕초보그럼 전통적인 사진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건가요?

이규현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어떤 설명도 가공도 없는 스트레이트 사진 한 장으로 순수하게 시각적인 감동을 주는 사진도 물론 좋은 미술작품이지요최근 몇 년 사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우리나라의 중견 사진가 배병우의 사진을 보면있는 그대로의 소나무 숲을 찍어 아무 가공 없이 보여주는데 수묵화처럼 사색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있지요누구나 사진기 셔터를 누를 수는 있지만같은 자연을 놓고 누구나 이렇게 찍을 수는 없겠지요. 

왕초보어찌 보면 꾸며내지 않은 진실이라는 점 때문에 사진이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규현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셨는데요,도로시아 랭(1895~1965)이라는 미국의 여성 사진작가는 철저하게 사실을 그대로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감동을 준 작가입니다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이민가족 어머니’(1936)는 미국 경제대공황 시기에 아이 7명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서부의 한 어머니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이에요이 엄마는 나이가 32세밖에 안됐는데삶의 고통이 너무나 느껴지지요젊은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나지쳐서 고개를 파묻은 아이들 모습을 보세요있는 그대로 실제 인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기에 더 감동을 주는 것이지요.
왕초보그런데 사진도 인기 있는 것은 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고 하셨는데뽑고 또 뽑을 수 있는 사진이 어떻게 거래가 가능한가요?
이규현필름만 있으면 사진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으니까 미술작품으로서 사진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사실 미술딜러들은 사진의 에디션을 제한해서 값을 통제하거든요.

왕초보에디션이 뭔가요?

이규현예를 들어 한 필름에서 뽑은 사진 작품의 수가 5장이면 에디션이 5개인 거지요사진이나 판화에는 이런 에디션이 있는데작품 아래쪽에 보면 1/5, 3/5 하는 식으로 써 있어요전체 에디션 5장 중에 첫 번째 것두 번째 것이라는 뜻입니다그리고 5장 외에는 뽑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왕초보보통 에디션은 몇 장 정도 되나요?

이규현5장 하는 경우도 있고, 100장 하는 경우도 있고많이 보급하기를 원하는 작가는 에디션이 많고인기 작가라서 값을 통제해야 하는 경우에는 에디션이 적지요현대 사진 작가들 중 비싼 작가들은 대부분 5~10장 이내에서 에디션을 제한합니다.

왕초보사진을 거래할 때에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 원칙이 적용되는 거네요이규현당연하지요희소성이 값을 정해요.실제 이런 일이 있었어요에드워드 스타이켄(1879~1973)이라는 미국 사진작가의 작품 달밤 연못(The Pond-Moonlight)’2006 2월 뉴욕의 경매시장에 나왔어요.이 사진은 전세계에 딱 세 장 남아 있었는데한 장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다른 한 장은 모마에 있었지요그 마지막 한 장이 나온 거예요이 사진은 한 개인컬렉터가 290만달러( 30억원)에 낙찰을 해서 사갔습니다사진 한 장에 너무 비싼 값을 치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컬렉터는 자기 집을 세계적 미술관과 같은 대열에 올리는 대가로 이 값을 치른 것이지요사진은 예술적인 가치에서나 경제적인 가치에서나 당당한 미술의 영역이라는 것을 이제 의심하지 않겠지요?

Posted by slow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