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 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요. 사진도 미술인가요?
이규현: 당연하지요. 흔히 그림이나 조각만 ‘미술’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사진은 미술의 아주 중요한 영역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회화, 조각을 압도할 정도로 많은 미술작가들이 사진을 하고 있고, 관람객들도 회화 못지 않게 사진을 좋아하지요.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기 있는 작가들의 사진은 회화 못지 않은 가격으로 대접을 받고 있답니다. 사실 요즘 작가들은 회화, 사진, 조각, 영상(비디오)을 넘나들며 하는 멀티플레이어들도 많아요.
왕초보: 그래요? 하지만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규현: 그야 그렇지요. 이젠 똑딱 카메라뿐 아니라, 전문가용 카메라로 전문가 못지 않게 사진을 잘 찍는 일반인들도 많은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림도 사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얼마나 평범하지 않게 작가의 개성과 생각이 들어가게 하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봐야지요.
왕초보: 사진이 미술로 인정을 받은 건 오래 전부터인가요?
이규현: 사진은 처음엔 기록으로서만 기능을 한 것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해요. 공식적으로 사진이 발명됐다고 발표된 것은 1839년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요. 그런데 사진이 보급 되면서 우선 미술이라는 예술분야 자체에 변화가 왔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등장한 게 19세기 후반인 것을 잘 생각해보세요. 화가들은 사진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더 이상 외부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외부세계를 ‘기록’한다는 기능면에서 그림은 어차피 사진에 완전히 밀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진 역시 단순히 기록 하는 기능 외에 예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점점 사진가들은 깨닫게 되었어요. 사진 역시 100%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시선과 의도에 따라 제각각 개성이 다른 작품으로 나오는 것이었지요.
왕초보: 컨셉이라니요?
이규현: 토드 파파조지라는 사진가는 “기술발달로 누구나 사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사진가는 기술자가 아니라 시인이 되었다”고 말했어요. 작가의 아이디어와 주제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에 뽑혔던 정연두라는 작가의 초기작품인 ‘원더랜드’ 시리즈를 볼까요?
왕초보: 그럼 전통적인 사진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건가요?
이규현: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어떤 설명도 가공도 없는 스트레이트 사진 한 장으로 순수하게 시각적인 감동을 주는 사진도 물론 좋은 미술작품이지요.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우리나라의 중견 사진가 배병우의 사진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소나무 숲을 찍어 아무 가공 없이 보여주는데 수묵화처럼 사색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있지요. 누구나 사진기 셔터를 누를 수는 있지만, 같은 자연을 놓고 누구나 이렇게 찍을 수는 없겠지요.
왕초보: 어찌 보면 꾸며내지 않은 진실이라는 점 때문에 사진이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왕초보: 그런데 사진도 인기 있는 것은 시장에서 비싸게 팔린다고 하셨는데, 뽑고 또 뽑을 수 있는 사진이 어떻게 거래가 가능한가요?
이규현: 필름만 있으면 사진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으니까 미술작품으로서 사진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미술딜러들은 사진의 에디션을 제한해서 값을 통제하거든요.
왕초보: 에디션이 뭔가요?
이규현: 예를 들어 한 필름에서 뽑은 사진 작품의 수가 5장이면 에디션이 5개인 거지요. 사진이나 판화에는 이런 에디션이 있는데, 작품 아래쪽에 보면 1/5, 3/5 하는 식으로 써 있어요. 전체 에디션 5장 중에 첫 번째 것, 두 번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5장 외에는 뽑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왕초보: 보통 에디션은 몇 장 정도 되나요?
이규현: 5장 하는 경우도 있고, 100장 하는 경우도 있고. 많이 보급하기를 원하는 작가는 에디션이 많고, 인기 작가라서 값을 통제해야 하는 경우에는 에디션이 적지요. 현대 사진 작가들 중 비싼 작가들은 대부분 5~10장 이내에서 에디션을 제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