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누워 있는 부처’(1994)
이규현: 미디어아트나 디지털아트나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미술에서 ‘미디어’라는 건 작품제작에 사용한 재료나 제작방법을 뜻하니까,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한 미술이라는 뜻에서 ‘디지털 미디어아트’ 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와 방식, 즉 뉴미디어로 제작하는 미술이기 때문에 ‘뉴미디어 아트’라고도 하지요.
왕초보: 그럼 뉴미디어 아트라면 그냥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이겠네요?
이규현: 그렇지요.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뉴미디어 아트는 시대에 따라 바뀌지요. 옛날의 뉴미디어가 지금은 올드 미디어가 되는 것이니까요. 용어 얘기는 그만 하고, 뉴미디어 아트 얘기로 들어가보지요. 먼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당시엔 비디오가 최첨단 뉴미디어였어요. 하지만 그 걸 가지고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지요. 그 걸 처음 한 게 바로 백남준입니다. 1965년에 “비디오가 언젠가는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지요.
백남준 ‘워치독’(1997)
이규현: 네, 백남준은 비디오를 포함한 모든 새로운 기술을 예술의 새로운 도구로 썼어요. 1984년에는 위성으로 서울, 뉴욕, 파리 현장을 동시 촬영해 한 화면에서 중계하는 작품을 했지요. 지금 생각할 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는 첨단기술이었고, 무엇보다도 기술발달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고 전망 하지만, 백남준은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해주는 가를 보여준, 긍정적인 사람이었어요. 머지 않아 기술이 예술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는데, 지금 정말 그의 말처럼 되었잖아요. 지금은 오히려 전통미술 제작방식보다 뉴미디어를 이용한 작품이 더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인천시에서 올해 8월에 ‘인천국제 디지털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여기에서 총감독을 맡은 김형기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디지털아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작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제작방식에서 어떤 식으로든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왕초보: 그런데 뉴미디어 아트는 왠지 어려울 것 같은데, 왜 뉴미디어 아트를 그렇게 많이 하는 거죠? 뭐가 좋은 거죠?
이규현: 뉴미디어 아트는 어렵지 않아요. 만들기는 어려울 지 몰라도, 관객 입장에서는 더 재미있는 미술이에요. 왜냐하면 첨단기술을 사용하면 작가의 상상력을 작품으로 실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이번 달에 뉴욕의 제임스 코핸 갤러리에서 백남준 개인전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누워 있는 부처(Reclining Buddha)’라는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비디오 스크린 위에 코믹한 표정의 불상이 누워 있고, 그 아래 스크린 두 개에서 여인의 나체가 두 동강 나 보여지고 있어요. 부처상과 비슷하게 누운 자세인데, 상체와 하체를 각기 다른 거리에서 찍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몸처럼 보여요. 그런데 실제로 이 작품을 보면, 여인이 몸을 이리 저리 돌리며 불편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두 동강이 난 누드가 더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가만 보고 있으면, 서로 전혀 조화로울 것 같지 않은 불상과 여인 누드가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 웃음이 킥킥 납니다. 만일 이 작품에서 불상 아래에 비디오 스크린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정적인 이미지, 그림이나 사진이 있었다면 이만큼의 재미가 없었겠지요. 첨단기술 덕에 미술작품을 더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둘러서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설치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멀티플/다이얼로그∞’
이규현: 하지만 뉴미디어 아트를 보면 작품 제작방식은 기계의 도움을 얻었을지언정, 작품은 여전히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하나 예를 들어보지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조각 ‘다다익선’이 상설 전시돼 있는데, 올해 초에 작가 강익중이 ‘다다익선’을 빙 두르는 ‘삼라만상’이라는 작품을 설치했어요. 18m 높이의 백남준 대표작품을 감싸는 나선형 복도의 벽에 강익중 작가가 그림 6만점을 각종 오브제와 함께 붙인 것이지요. ‘멀티플/다이얼로그∞’라는 제목의 이 전시에 가면 관객은 탑처럼 생긴 백남준의 ‘다다익선’ 주변을 돌면서 산을 올라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요. 강익중 작가의 작품 곳곳에 음향이 설치돼 물, 바람, 새, 풍경 소리가 들리고, 작가의 어머니가 쓰던 풍금 어디에선가 ‘그네’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관객이 벽에 걸린 그림을 그냥 보고 지나가는 수동적 관람을 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에 들어가서 소리도 듣고 걷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관람하게 되는 것이지요. 작품에서 산소리가 나게 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관객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작가의 손맛이지요. 백남준의 대표작인‘다다익선’만 해도 그래요. 이 작품은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개의 비디오 모니터를 쌓아 만든 것인데, 높이 18m의 이런 조각이 그냥 돌이나 석고, 나무조각이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육중하고 재미 없을지. 그런데 하나하나 스크린이 움직이는 비디오로 쌓여 있으니까, 이 탑 모양의 조각이 마치 살아서 떠들고 있는듯한 느낌이지요. 기술 덕에 더 인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에요.
미구엘 슈발리에 ‘프랙탈 플라워’(2008)
이규현: 네, 아티스트들은 관객과 좀 더 가까이 호흡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첨단기술이 그 걸 해결해주는 거죠. 뉴미디어 아트는 관객과 직접 쌍방향 소통을 하기도 합니다. 이걸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라고 하는데요, 쉽게 말해 관객의 행동에 따라 작품 이미지가 변하는 것이지요. 저녁에 서울 청계천 광교 근처에 가면 프랑스 작가 미구엘 슈발리에의 ‘프랙탈 플라워’(Fractal Flower, 2008)라는 작품을 볼 수 있어요. 청계천에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보도 쪽 옹벽에 디지털 꽃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쏘는데, 관객이 그 앞에서 움직이면 꽃이 활짝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듯 바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센서를 달아 놓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작품이야말로 첨단기술 덕에 가능한 것이지만, 작품을 그렇게 만든 작가의 마음은 너무 인간적이지 않나요? 관객과 함께 놀고 싶어하는 것이니까요.
왕초보: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이렇게 첨단 기술을 사용한 작품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죠?
이규현: 좋은 질문이에요. 뉴미디어 아트는 늘 그 게 문제가 됩니다. 실제 뉴미디어 아트를 가지고 하는 미술전시장에 가면 몇 작품은 꼭 고장 나서 작동이 안 되곤 하죠. 보통은 작가가 매뉴얼을 만들어 놓아 고칠 수 있게 해 놓아요. 그 작가의 작품을 손볼 수 있는 사람이 특별히 정해져 있기도 해요. 백남준의 경우가 그렇지요. 하지만 아무리 잘 해도 전통적인 미술에 비해 보존의 문제는 계속 불거지고, 그 건 뉴미디어아트가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예요. 그런 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방식의 미술작품이 더 인기가 있는 게 현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