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필자2009. 6. 15. 09:19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이야기’는 미술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 왕초보씨와 아트저널리스트 이규현(artkyu.tistory.com)이 나누는 대화체의 미술 에세이입니다이규현은 조선일보 미술담당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로 미술 관련 글을 쓰며 대학에서 교양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본 글은 [모두를 위한 미술]을 기치로 미술 대중화를 지향하는 온라인 미술장터 ‘아트폴리’(www.artpoli.com)에서 제공합니다.

 

왕초보설치미술이니 공공미술이니 하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데정확히 어떤 게 설치미술이 되는 건가요?

이규현설치미술(installation art) 3차원 공간을 다 이용해서 만드는 미술입니다그냥 벽에 걸어 놓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마치 집안에 가구를 배치하듯이 전시장에 오브제들을 배치하는 것이지요. 197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이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는데 그 때 한창 설치미술이 폭발적으로 나왔고이제는 매우 보편화했지요.

왕초보부피가 큰 조각도 설치미술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규현엄밀히 말해 설치미술은 조각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어요하지만 부피가 크다는 것만으로 설치미술이라고 하긴 어려워요왜냐하면 설치미술은 그 작품뿐만 아니라 그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까지 포함해서 통틀어 작품이 되는 것이거든요조각은 그 작품 하나로 끝나기 때문에 전시장소와 상관 없이 어디에 갖다 놓아도 같은 작품이지만설치미술은 설치되는 장소가 작품 자체 못지 않게 중요해요.

왕초보똑같이 만들어도 어떤 장소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이 얘기인가요?

이규현맞아요그게 설치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에요미술적인 용어로 장소특수적(site-specific)이라고 하지요.예를 들어 지난 시간에도 얘기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멀티플/다이얼로그∞’ 전시를 다시 생각해볼까요? 18m 높이의 백남준 대표작 다다익선을 감싸는 나선형 복도의 벽에 강익중의 작품 삼라만상이 설치된 전시예요관객은 탑처럼 생긴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감상하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 마치 산을 올라가는 느낌을 가지도록 돼 있어요곳곳에 음향이 설치돼 물바람풍경 소리가 들려요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었는데그의 대표작을 둘러싼 강익중의 설치작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막 섞여 조화를 이루는 있는 모습으로백남준의 대표작과 서로 교감을 주고 받고 있어요또 국립현대미술관의 가운데 복도가 나선형으로 감겨진 형태이기 때문에 백남준 작품을 감상하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강익중 작품을 함께 감상하도록 되어 있어요그러니 만일 이 강익중의 작품이 다른 곳에 설치된다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겠지요.


‘멀티플/다이얼로그∞’ 전시에 설치된 백남준의 ‘다다익선’(가운데)과 강익중의 ‘삼라만상’

 

왕초보설치미술은 감상할 때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어요.

이규현그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시간 걸리는 것도 걸리는 것이지만그냥 하나의 작품을 바라 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게 되지요.

왕초보적극적 감상이라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래요?

이규현예를 들면 지금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에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곽선경이라는 설치미술 작가의 ‘280시간 껴안기(Enfolding 280 hours)’라는 작품이에요전시실에 작품을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이 대략 280시간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나왔지요작가는 전시실의 벽과 기둥에 매스킹 테이프(검은 종이 테이프)’ 5km 길이를 격렬하게 찢으며 이어 붙였어요그래서 마치 거인이 큰 붓을 들고 텅 빈 전시실에 쓱 붓질을 하고 지나간 듯 해요벽에서 나온 붓 자국이 기둥으로 이어지면서 흐름을 만들고관객은 이 전시실 안에 있으면 격렬한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느낌을 받아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중인 곽선경의 '280시간 껴안기'.

 

왕초보관객이 작품 속에 휘말려 드는 느낌이겠네요.

이규현맞아요그 게 바로 설치미술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곽선경 작가의 경우 관객들이 벽에 붙은 그림을 수동적으로 쳐다보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뭔가 답답하고 거리가 있는 것을 느꼈대요그래서 거리감을 좁힐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런 작품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그런데 이런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전시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이 검은 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지요전시실을 몇 바퀴 걷고 나니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사람도 있고전시실에 들어서면서 이상한 나라에 온 줄 알고 괴성 지르며 좋아하는 어린 아이도 있어요관객들이 어떤 작품을 수동적으로 쳐다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지요이렇게 관객이 작품을 보고 반응하는 모습은 작품의 일부라 할 수 있어요.

왕초보그런데 이런 설치미술은 전시가 끝나면 어떻게 하나요?

이규현대체로는 다 철거해버리지요.

왕초보아깝네요.

이규현하지만 그 아까운 마음아쉬움조차 작품의 일부라면 어떨까요그것도 예술적인 느낌이니까요설치미술의 한 종류로 대지미술이라는 게 있는데쉽게 말해 하늘바다 같은 대지를 바탕으로 설치를 하는 것이지요이런 작품이야말로 영속성이 없어요생존한 대지미술 작가로 가장 유명한 크리스토&장클로드 부부 작가는 파리 퐁뇌프 다리를 천으로 감싼다든지미국 플로리다주의 작은 섬들 주변을 분홍색 천으로 감싸는 설치작품을 했는데일정한 전시 기간이 지나면 완전히 철거해버립니다그러면 나중에는 사진으로만 기록이 남을 뿐 다시는 그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는 것이지요그런데 이 작가들은 이렇게 순간적으로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아름다움의 순간성이 자신들 작품의 중요한 주제라고 말해요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그만큼 더 아쉽고 애틋하고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플로리다주 섬 주변을 분홍 천으로 두른 크리스토&장클로드의 작품. christojeanneclaude.net



파리 퐁뇌프 다리를 천으로 감싼 크리스토&장클로드의 작품. christojeanneclaude.net

 

왕초보설치미술 작품은 어떻게 판매하나요?

이규현어떤 특별한 장소를 위해 제작하는 게 많으니 주문제작을 받아 처음부터 그 장소에 설치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대체로 설치미술 작품은 상업성이 떨어져요그러면서 전시할 때 공간은 좀 많이 차지하나요그래서 설치미술은 상업갤러리보다는 미술관특히 국제비엔날레를 통해 많이 소개됩니다우리나라 설치미술 작가인 전수천과 강익중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았지요.


서울시 청계광장에 설치된 올덴버그의 '스프링'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설치된 다니엘 뷔렌의 작품 ‘오색찬란한 하늘아래 산책길’


왕초보: 길거리나 유명한 건물에 설치돼 있는 작품도 설치미술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규현: 작품이 설치될 장소의 특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지요. 그런 경우 특별히 공공미술이라고 불러요. 서울시 청계광장에 있는 올덴버그의 조각 스프링이 말하자면 공공미술이지요. 사실 이런 공공미술은 지방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경기도 안양시에서 격년으로 하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설치 작품 수십 점을 평촌 일대 곳곳에 전시하는 이벤트예요. 궁극적으로 도시 전체의 얼굴을 바꾸어 간다는 점에서 공공미술, 설치미술의 좋은 예로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한 아파트 단지 내에 프랑스 작가 다니엘 뷔렌의 오색찬란한 하늘아래 산책길이라는 설치작품이 들어 섰는데, 투명한 터널의 천장이 색유리로 덮인 모양의 설치물이에요. 아파트 주민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평범한 길에 놓였어요. 매일 이 아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머리 위로 색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색색으로 뿌려지는 거예요. 미술작품이 시민들의 일상생활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설치미술이 관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미술이라는 점이 이해가 되지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