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필자2009. 7. 15. 22:35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이야기’는 미술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 왕초보씨와 아트저널리스트 이규현(artkyu.tistory.com)이 나누는 대화체의 미술 에세이입니다. 이규현은 조선일보 미술담당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로 신문과 잡지에 미술 기사를 쓰며 대학에서 교양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 본 글은 [모두를 위한 미술]을 기치로 미술 대중화를 지향하는 온라인 미술장터 ‘아트폴리’(www.artpoli.com)에서 제공합니다.

왕초보: 미술작품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게 있어요. 작품 가격은 대체 어떻게 매겨지는 건가요?
이규현: 그거 많은 사람들이 매우 궁금해하지만 답은 매우 복잡하지요. 한 번에 끝낼 수 없는 주제이지만, 일단 중요한 것부터 얘기해보면, 작가의 미술사적인 가치•유명세•인기정도, 작가의 이전 판매기록, 작품의 질과 희귀성, 작품 재료와 크기, 작품의 출처 및 소장기록, 파는 장소와 시점 등 수많은 요소가 합쳐져서 가격이 정해지지요.
왕초보: 그런 것의 가치를 누가 정하나요?
이규현: 그것도 역시 중요한 질문인데요, 가장 전통적인 방식, 즉 화랑을 통해 전시하고 판매할 때는 미술딜러(보통은 화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와 작가가 합의해서 정하지요. 요즘은 경매회사를 통해 파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작품을 팔아달라고 내놓는 위탁자와 경매회사가 합의해 추정가(얼마에 낙찰될 것 같다고 정하는 가격 범위)를 정하고, 최종 판매가격은 현장에서 작품을 사겠다고 응찰하는 사람들의 경쟁에 의해 정해집니다. 화랑과 경매회사는 작품 판매를 대행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습니다. 화랑의 경우 보통 작품 값을 작가와 화랑이 50:50으로 나누고, 경매의 경우엔 경매회사측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에게 각각 작품 값의 10~20% 정도를 수수료로 받습니다.

(사진1: 서울옥션 경매에서 직원들이 전화로 응찰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2: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직원들이 전화로 응찰을 받고 있는 모습)



왕초보: 작가 혼자 정하는 경우는 없고요?
이규현: 그런 경우도 물론 있지요. 신진 작가의 경우엔 특히 많아요. 하지만 현대미술에서는, 특히 유명작가의 경우엔 작품 판매 경로가 나중에 그 작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작가가 직접 파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런데 요즘은 화랑도 경매도 아닌 대안 판매 통로들이 생겨서 이런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아트폴리(artpoli.com)’도 그런 통로지요. 아직 화랑 계약이 없는 신진 작가들이 직접 작품 이미지를 온라인으로 올리면 수요자들이 알아서 사고, 아트폴리는 중개자 역할로 수수료를 받는 식이지요. 이런 경우 작가가 작품 값을 정하지만, 중개자가 일정 조건을 정합니다. 아트폴리의 경우엔 최대한도가 200만원이라는 조건이 있고, 작가가 그 한도 내에서 도저히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가격에 관계 없이 판매 자체를 하기 싫다면 판매 하지 않고 전시만 하기도 합니다. 경매회사의 경우에는 전시를 하는 목적이 경매, 즉 판매에 있기 때문에 위탁자와 경매회사간에 가격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작품이 아예 출품되지 않지요.

(사진3: 화랑들이 각각 부스를 차리고 단기간 판매를 목적으로 전시를 하는 아트페어 - 한국국제아트페어인 ‘키아프’)




(사진4: 화랑들이 각각 부스를 차리고 단기간 판매를 목적으로 전시를 하는 아트페어 - 뉴욕의 ‘아모리쇼’)



왕초보: 그런데 미술 작품 가격 정하는 기준이 주관적인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이규현: 맞아요. 그래서 미술 작품 가격은 늘 얘깃거리가 많이 되는 거예요. 일반 상품처럼 객관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집 같으면 어느 지역은 1평당 얼마, 쌀이나 고기는 kg당 얼마, 이런 식으로 쉽게 떨어지는데, 그림은 그게 아니잖아요. 작가의 가치, 작품의 가치, 인기정도, 이런 것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선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입체파 그림으로 20세기 초반 유럽 근대미술에 끼친 미술사적 영향력은 이미 여러 세월 여러 사람을 통해 입증된 것이고, 박수근과 이중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범국민적인 인기가 있는 근대미술 화가라는 것도 별 이견이 없는 것이고, 같은 피카소의 작품이면 판화 보다는 유화가 비싸다든지, 똑 같은 유명작가의 그림이라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나온 것보다는 이름난 컬렉터가 내놓은 것이나 유명 미술관에 걸려 있던 것이면 사려는 사람이 더 많다든지, 이렇게 대부분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조건이 가격 결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왕초보: 그렇게 해서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없는 작품의 예를 들어주세요.
이규현: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지금까지 경매에서 팔린 제일 비싼 작품은 2005년 뉴욕 소더비에서 1억400만달러(약 1040억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인데, 피카소의 초기 작품으로 시장에서 쉽게 보기 드문 희귀작품인 데다가 보존상태도 좋고, 위탁자가 주영국 미대사를 지낸 존 휘트니 부부였기 때문에 로열의 조건을 다 갖춘 것이었어요. 1900년에는 뉴욕 크리스티에서 반 고흐의 ‘가셰의사의 초상’이 8250만 달러(약 825억원)에 경매 낙찰돼 당시로서 최고가를 기록했는데요, 이 때는 세계 미술시장 호황의 피크였던 시기였고, 특히 인상파 미술에 대한 수요 쏟아진 때였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반 고흐의 매우 잘 알려진 작품인데다가 경매 직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전시까지 했지요. 초고가의 가격을 기록하는 작품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사진5: 경매에서 약 1040억원에 낙찰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사진6: 경매에서 약 825억원에 낙찰된 반 고흐의 ‘가셰의사의 초상’)



왕초보: 그림 재료와 크기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요소가 되겠군요.
이규현: 맞아요. 특히 재료는 그래요. 대부분 사람들은 유화를 좋아하지요. 아무래도 가장 덜 변하고 오래 가니까요. 크리스티 경매회사(Christie’s)가 2007년에 팔았던 작품을 재료별로 분석했던 적이 있는데, 낙찰가격총액 중 유화가 차지한 게 75%, 수채화와 드로잉은 합해서 고작 11%였어요.
왕초보: 그런데 가끔 보면 도저히 비싸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작품이 있어요. 그냥 쉽게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이라든지, 쓰레기 같은 거 덜렁 갖다 놓아서 미술작품처럼 보이지도 않는 거라든지…….
이규현: 그런 경우, 보이지 않는 요소 중 미술사적인 원인이 대부분이에요. 우리가 두 번째 시간에 팝아트 얘기할 때도 그 걸 잠깐 얘기 했는데요,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는 팝아트의 대표작가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작가들이 왜 그렇게 비쌀까? 바로 미술사적 가치 때문이라고 얘기했지요. 대중적이고 단순한 소재를 택해 장난한 것처럼 그렸지만, 소재선택이나 작품 제작방식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미술’ 즉 당시 미국이 지향하던 ‘민주주의’를 지향했어요. 게다가 작품 속에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시점의 시대성을 담는다는 정신이 지금까지도 현대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런 미술을 시작한 선구자들은 비싼 것이지요.
왕초보: 참, 미술작품 가격 정하는 게 복잡하군요.
이규현: 이 밖에도 얼마나 유명한 컬렉터가 그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느냐, 얼마나 권위 있는 화랑에서 그 작가를 밀고 있는가, 얼마나 잘 나가는 국가 출신 작가인가 등등이 모두 작품가격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칩니다. 
왕초보: 작가의 빽도 중요하다는 얘기네요.
이규현: 사실이 그래요. 유명 영화배우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어 하듯, 유명한 컬렉터나 유명한 미술관이 집중적으로 구입하는 작가는 인기가 올라가지요. 미술에서 시장의 역할이 점점 커질수록, 오히려 평론가의 역할보다 컬렉터나 딜러의 역할이 더 커져요. 살아있는 작가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미국의 제프 쿤스와 영국의 대미언 허스트는 각각 세계 최고의 딜러인 래리 가고시언과 제이 조플링이 다루는 작가입니다. 대미언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레이철 화이트리드 같은 영국의 작가들은 1990년대에 ‘YBA(Young British Artists)’ 즉 영국의 젊은 작가들 그룹으로 불리며 크게 부상한 세계적 작가들인데, 찰스 사치라는 영국의 세계적 컬렉터가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전시를 하면서 키워냈지요. 초고가로 비싼 작가들 뒤에는 이런 거물 컬렉터와 딜러가 숨어 있어요.
왕초보: 그런데 유명 컬렉터들이 수십억원, 수백억원 주고 미술품을 사는 것은 투자의 의미도 있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미술품 가격은 쉽게 변하지 않나요?
이규현: 피카소나 박수근처럼 오랜 시간 동안 가격이 서서히 다져진 작가들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사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장담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도 미술작품 가격은 작품이 판매되는 그 장소, 그 시점의 분위기와 유행에도 영향을 크게 받아요. 중국이 잘 나갈 땐 중국 작가들이 비싸고,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 미국 작가들 가격이 주춤하고. 그래서 미술 작품을 투자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리서치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특히 현대미술 가격은 유행과 경기변동에 민감하니까, 앞 부분에 얘기한 기본적인 조건 외에도 변수들이 많이 작용을 하거든요.
Posted by slow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