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생각2008. 11. 6. 22:06

내가 최근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왜 아트폴리를 시작했냐는 것이다. 친한 사람이건 처음보는 사람이건 누구나 물어본다. 한사람이 몇번씩 물어보는 적도 있다. 사실 이해가 간다. 내 과거 경력은 미술과 전혀 상관이 없으니 내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궁금했을 것 같다.

내 질문은 항상 똑같다. "그냥 우연히." 그리고 부연 설명 - "지금은 갤러리 관리자인 컨설팅 후배하고 커피 마시면서 미술 시장이 좀 닫혀있는 시장 아닌가 등 외부자로서의 내 시각을 얘기하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다."

그게 사실의 전부다. 2007년 봄의 어느날이었던 그 때 아트폴리의 원형을 처음 떠올린 것이고, 그 얼마 후 사이트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나면 나도 항상 개운치 않은 느낌이었다. 위의 얘기는 "계기"일 수는 있어도, 그게 전부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면 나는 그 당시에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갖고 있었고,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데 현재 아트폴리에 거의 100% 전념하고 있는 이유는 없지 않나.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시장 조사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후 1년반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시장조사를 해 본적이 없다. 그러면, 내가 (그리고 이어서 치형이) 빠져들게 된 이유는 뭘까?

  1.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조"한다는 흥분. 우리가 만든 것을 사람들이 쓰게 되고,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변화될 것이라는 그 기대감.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호기심과 창조적 과정. 난 그런 느낌이 즐겁다.
  2. "된다"라는 직관. 시장조사는 안 했지만, 이건 분명히 시장이 있다라는 느낌이다. 작가들에 비하여 너무 적은 기회. 미술에 관심은 높아 가지만, 대중들이 접근하기에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부담 없는 채널의 없음 등이 그런 이유이다.
  3. 예술이라는 그 자체로 새롭고 재미있음. 여태까지는 딱딱하고 분석적인 기업 경영자들, 컨설턴트들과 일했는데, 예술가들과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전혀 다른 삶과 사고의 방식.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신선한 느낌이 있다. 또, 미술 사이트이다보니, 미적인 요소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도 재미있다.
  4. 예술가 기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록밴드를 만들어 대학교 때까지 같이 연주하곤 했었다. 연습만 하다가 고등학교 때 청소년 단체에서 하는 고교 록밴드 대회에 나가서 상받고, 대학교 때는 콘서트 1회에 그친 아마츄어 밴드였다. 대학가요제를 나가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단한 록뮤지션이 될 정도의 재능은 아니었다고 (또, 경제나 경영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했었다. 드럼을 치던 친구는 지금 광고회사를 경영하는데, 요즘도 가끔 신사동의 바에서 연주를 하곤 한다. 나한테도 자꾸 하자고 하는데, 계속 손사래를 치다가 요즘은 "해 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지금도 내 시간 죽이기 취미 중의 하나는 유튜브에서 록밴드나 기타리스트 연주를 보고 듣는 것인데, 보다보면 문득 문득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고보니 함께 일하는 치형도 예전에 전자기타를 쳤다고 한다. 그런 예술가 기질때문에 이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도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아트폴리라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니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이유들이 마음 속에 숨어있었나 보다... 다른 분들에게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아트폴리. 하지만 힘들기만 한 고행이 아니라, 힘들면서도 즐거운 여행이다.

Posted by slow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