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필자2009. 9. 18. 21:46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 이야기'는 이번 글로서 마감합니다. 보잘 것 없던 아트폴리 초기부터 해외에 계신 지금까지 1년간 매달 좋은 글을 써주신 이규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이야기’는 미술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 왕초보씨와 아트저널리스트 이규현(http://artkyu.tistory.com)씨가 나누는 대화체의 미술 에세이입니다. 이규현씨는 조선일보 미술담당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로 신문과 잡지에 미술 기사를 쓰며 대학에서 교양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쇼핑’ ‘미술경매이야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 본 글은 [모두를 위한 미술]을 기치로 미술 대중화를 지향하는 온라인 미술장터 ‘아트폴리’(www.artpoli.com)에서 제공합니다.

이규현: ‘왕초보와 이규현의 미술이야기’를 연재한 지 이번 달로 벌써 1년이 됩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술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에 대해서 얘기해보지요.
왕초보: 좋습니다! 이젠 스스로 미술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요.
이규현: 우선, 당연히 많이 보라는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가장 뻔하지만 이만한 정답이 없어요. 자꾸 보다 보면 좋아지고, 무엇보다도 나만의 미술작품 읽는 법, 보는 법이 생겨요. 미술을 보는 눈은 전문가들도 평생 길러가는 것이에요.
왕초보: 미술관, 갤러리, 마구 다니면서 볼까요?
이규현: 아니오. 그렇다고 무작정 다니면서 막 보는 게 아니고, 어떤 전시를 볼 지, 어떤 작가를 만날 지, 이런 것을 계획 세워 가면서 보세요. 외국의 유명 화가 이름이 달린 블록버스터 전시도 좋지만, 현재 살아 있는 작가들의 생생한 1급 작품을 가지고 하는 전시가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게 많아요. 지금 주변에서 어떤 전시를 하는지 찾으려면 신문이나 미술잡지 기사가 도움이 되지요. 미술잡지는 주로 월간지인데, 미리 구독을 하진 말고 한 권씩 사서 보다가 이게 제일 나랑 맞는다 생각 드는 게 있으면 그 때 구독을 하세요. ‘서울아트가이드’는 서울시내 웬만한 갤러리에 가면 무료로 집을 수 있는 무가지인데 정보와 읽을거리가 많이 들어있어요. 온라인 ‘달진닷컴’(daljin.com)에서도 서울아트가이드에 실린 글과 그 밖의 전시정보를 읽을 수 있어요. 온라인은 ‘네오룩(neolook.net)’도 많이 봐요. 단, ‘달진닷컴’이나 ‘네오룩’은 전시의 정보가 일괄적으로 한번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전시의 중요도를 따지기 어려워요.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에 난 미술기사를 읽는 게 어떤 전시가 화제이고 볼만한 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왕초보: 전시를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규현: 미리 그 작가에 대해 공부하고 가는 거지요. 어떤 미술작가에 대해 온라인으로 검색 한번만 해봐도 그냥 가는 것과는 다르지요. 그리고, 가능하면 작가를 직접 만나보는 것을 권해요. 작가를 직접 만나서 얘기 해 보면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고 미술 보는 게 더 재미 있어져요. 갤러리 전시일 경우 갤러리에 전화를 해서 작가가 전시장에 나오는 날을 물어보세요. 미술관 전시일 때는 보통 작가 또는 큐레이터와 관객이 만나는 대화의 프로그램을 따로 만드는 데, 관심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 때 놓치지 말고 가서 만나 보세요. 또, ‘오픈 스튜디오’ 같은 행사도 있어요. 작가들이 한 건물에 단체로 입주해 있는 입주 프로그램의 경우, 연 1~2회 정도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하는데, 이 때 가면 작가들의 방에 직접 들어가서 어떻게 작업을 하는 지 볼 수 있고, 작가에게 질문도 할 수 있지요. 꼭 유명한 작가를 만날 필요는 없어요. 관객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길 원하는 젊은 작가들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작가를 만나보고, 궁금한 것은 질문도 해 보고, 그러면서 미술과 부쩍부쩍 가까워져요.

(사진1)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의 오픈 스튜디오 때 로비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모습.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 가면 작가들의 방에 직접 들어가 작품 하는 모습도 보고 작가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제공

왕초보: 미술관과 갤러리는 어떻게 다르지요?
이규현: 미술관은 전시와 교육이 목적인, 다시 말해 작품을 팔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교육하기 위해 전시 하는 곳이고, 갤러리는 작품을 팔기 위해 전시를 하는 상업전시장이에요. 그래서 미술관 전시는 어떤 특정 작가, 특정 나라, 또는 어떤 미술사적인 현상 등 주어진 주제에 따라 전시를 하지요. 교육적인 전시가 많아요. 이에 비해 갤러리는 상업적인 곳이지만 지금 현재 인기 있는 작가의 생생한 작품이 스튜디오에서 막 나와 선보이는 따끈따끈한 곳이에요. 일반인이 가기 더 가까운 곳에 있고, 입장료도 없고, 전시규모는 작지만 작가를 만나기는 더 쉽지요. 갤러리 수백 개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는 ‘미술 5일장’인 아트페어에 가면 각 갤러리들이 다루는 주요 작가들의 본보기 작품들이 몇 점씩 나와 있어서 지금 현재의 인기 있는 미술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데 좋아요. 그런데 아트페어와 비엔날레는 완전히 다릅니다. 비엔날레는 격년으로 하는 국제미술제인데, 원래는 상업성이 떨어지지만 실험적인 미래의 미술을 보여주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유명한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아트페어에 비하면 훨씬 상업성이 약하고,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미술, 미술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사진2) 2008년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 때의 붐비던 전시장.


(사진3) 2009년 여름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공공미술 국제미술제 ‘플롯09’.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제는 축제의 개념이 들어간 미술전시이면서 상업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실험적인 미술을 보여주는 전시다.


왕초보: 전시를 보고 나서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이규현: 물론이에요. 그래서 미술 애호가들끼리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추천해요. 미술작품을 보고 나서 그 추상적인 느낌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은 참 중요하거든요. 소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보러 다니면, 꼭 봐야 할 전시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고,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정리가 되지요. 그렇게 하면서 미술 보러 다니는 재미가 붙는 겁니다.
왕초보: 미술은 공부를 좀 해야 볼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아요.
이규현: 어느 분야나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게 있나요? 요리, 스포츠, 음악, 게임, 어떤 취미라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보는 것과 공부해가면서 즐기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미술공부는 다른 공부보다 재미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왕초보: 어떻게 공부하지요? 미술사책을 사서 볼까요?
이규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연대순으로 되어 있는 두꺼운 미술사 교과서는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별로 권하지 않고요, 그냥 재미 있으면서도 미술의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는 가벼운 책을 골라서 보는 게 좋을 거예요. 공부한다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왕초보: 신문과 잡지는요?
이규현: 살아 있는 작가의 인터뷰와 중요한 전시에 대한 리뷰가 실린 생생한 글은 신문과 잡지에 있기 때문에 그 것 역시 미술공부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접 작품을 사 보는 것도 권해요.


(사진4) 상업적으로 인기 있는 현대미술의 장터인 아트페어 전시장. 작가별 부스를 차리고 하는 아트페어인 ‘아트서울’


(사진5) 아래(Volta2009_001)는 매년 3월 뉴욕에서 열리는 젊은 아트페어인 ‘볼타쇼’의 2009년 전시 때 모습.


왕초보: 그림을 사라고요? 돈이 없는데요?
이규현: 비싼 그림을 살 필요도 없고, 처음엔 진짜 그림을 살 필요도 없어요. 저 역시 처음엔 전시장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포스터를 사다가 싸구려 액자를 해서 방에 걸어 놓곤 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작해요. 그러다가 10만원 하는 판화도 사보고, 100만원 하는 소품도 사보고 하는 거예요. 적은 돈이라도 직접 내 돈 내고 살 때, 그 작가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커지고, 미술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훨씬 진지해져요. 그러면서 미술에 확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왕초보: 누구나 미술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이규현: 네, 지난 3~4년 동안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호황과 불황의 격변을 겪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얻은 긍정적인 면은 컬렉터의 저변확대라고 생각해요. 컬렉터가 많아지니까 ‘컬렉터의 파워’가 커진 것이지요. 단지 돈을 가진 구매력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미술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몫이 일부 한정된 전문가의 일이 아니라 폭넓은 컬렉터 그룹의 일이 됐다는 것이지요. 미술시장이 지금처럼 열려 있지 않았을 때엔, 몇몇 유명 평론가나 중요한 언론이 미술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일을 독점했어요. 전문가들이 어느 작가가 훌륭하다, 어느 전시가 좋다고 하면 일반인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 전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가고 얼마나 그림이 팔렸다더라, 하는 게 금방 소문나고 보도가 되니까, 그런 게 평론가들의 몇 줄 글 보다 더 영향력이 있거든요. 
왕초보: 미술작가가 몇몇 전문가에 의해 평가 받는 게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는 ‘소비자 그룹’들에 의해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규현: 네, 그래서 작품 한 점을 사면서 그런 컬렉터 그룹에 들어가 미술계에서 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지요. 그 건 참 재미있고 뿌듯한 일이거든요. 미술을 가까이 하면 삶이 훨씬 재미있고 풍요로워 집니다. 미술과 함께 더 즐거운 삶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slow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