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생각2008. 12. 12. 11:44

아트폴리에서 최근 포스터와 카드 판매를 시작하였다. 일련의 새로운, 아마도 미술계에서는 비전통적인 사업모델들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미술에서 포스터와 원작의 관계는 음악에서 실제 공연과 녹음된 음악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미술시장이 음악의 19세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는 공연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음악의 대중화, 일상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 공연 중심이던 음악가들을 포함한 비판자들은 녹음기술을 이용한 음반 유통이 음악을 퇴화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음악가연합(The American Federation of Musicians)에서 1929년에 낸 광고(http://library.duke.edu/digitalcollections/adaccess.R0206/pg.1/)를 보면, 깡통 그림 위에 “Canned Music - Big Noise Brand - Guaranteed to produce no intellectual or emotional reaction whatever” (통조림 음악 – 큰 소음표 – 어떠한 지적 또는 감성적 감동도 낳을 수 없음을 보장함)이라고 써 있고 그 아래에는 녹음된 음악에 대한 평가절하와 비판이 담긴 성명을 볼 수 있다.


포스터에도 비슷한 비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는 오리지널만이 전달할 수 있는 정서적 감동과 기법적인 묘미를 전달할 수 없다는 등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스터, 또는 더 넓게는 Reproductive Art(재생, 복제된 미술)가 Recorded Music이 음악에서 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LP, CD, MP3로 기술은 변해왔지만 저장된 음악이라는 본질은 변함없는) 녹음된 음악이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 전에는 어떤 음악가의 음악을 듣고 싶으면 공연 현장에 가야만 했다. 그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공연 입장료도 비싸겠지만,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간적 제약으로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리고 녹음된 음악은 시간적으로도 음악의 한계를 없애 버렸다. 우리는 듣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미술은 어떤가? 원작(original) 시장이 중심이고, ‘복제된 미술’ 시장은 별로 발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복제된 작품들도 이미 사망한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신인 음악가들의 ‘앨범’이 계속 등장하는 음악시장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원작 시장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접근성은 음악에서의 공연에 대한 접근 이상으로 어려워 보인다. 유명 음악가의 공연 입장료가 비싸더라도, 유명 미술가의 작품 가격에 비하면 훨씬 싸다. 음악 공연은 동시에 여럿이서 즐기는데 반해, 미술의 원작은 한 사람이 사면 그 사람이 독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도 한 순간에 한 곳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공간적 제약은 음악이나 마찬가지로 크다. 원작 미술 시장은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시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터 같은 복제된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음악에서 녹음된 음악과 공연이 공존하듯이, 미술에서도 원작은 원작대로 복제품은 복제품대로 존재할 것이다. 단지 복제된 미술은 기존의 원작 시장에 잘 참여를 못하던 사람들을 미술 시장에 참여시켜 미술을 향유하게 할 것이다. 아까 본 20세기 초 미국 음악가들의 비난처럼 “복제된 미술은 진짜 미술이 아니다.”라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그 비판에 대한 예술적 철학적인 갑론을박은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이노베이션이 그렇듯이 원작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제미술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다. 그러면서 원작 시장도 아마 더 커질 것으로 본다. 카피를 통해서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원작에도 입문하는 사람이 늘 것으로 본다.


한편으로 작가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원작 시장만 있을 때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하나였다. 인정 받고, 유명해져서 작품 값이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복제미술 시장이 활발해지면, 작가들은 낮은 가격의 복제품을 많은 사람에게 팔아서 돈을 버는 또 하나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예전에는 상당히 재력이 있는 계층의 사람들만이 고객일 수 있었지만, 복제미술은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할 수 있다. 아마도 전통적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패션 시장처럼 명품 시장과 대중품 시장으로 나뉘고, 작가의 취향에 따라 누구를 자신의 중심 고객으로 삼는지도 나뉠 것이다.


호기심으로 좀 상업적인 질문 하나만 생각해 보자. 어느쪽이 더 수입이 좋을까? 높은 가격에 원작을 파는 것과, 복제품을 많이 파는 것 중에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중들이 미술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면 복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 더 큰 수입이 될 것이다. 어느 시장이건 명품을 소량 판매하는 것 보다, 대중적인 상품을 많은 사람에게 파는 곳이 더 수입이 많은 것처럼.


복제품 시장이 과연 얼마나 커질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복제미술품이 미술 시장을 대중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트폴리 포스터 등으로 꾸민 모습 보러 가기)

Posted by slowblogger